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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SS 게시판 2.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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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This is RSS Board.]]></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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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명문자기(銘文磁器)}]]></title>
								<link>/bbs/museum/742/326062/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5-06-11 10:38:37.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명문자기(銘文磁器)
 조선, 인천광역시 강화군 출토
 
 한림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강화행궁(1631~1866 : 왕이 머무는 임시 거처) 건물지에서 출토된 자기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사옹원(궁중의 음식을 맡아본 관청)의 분원을 경기도 광주에 설치하여 왕실이나 중앙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자기를 생산하였습니다.
 분원에서는 그릇의 굽 안바닥에 유약을 바르고 도구를 이용하여 글씨를 새겼는데, 이처럼 그릇에 글씨를 쓰는 행위는 분실이나 품질 저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서 조선시대 그릇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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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기와(瓦)}]]></title>
								<link>/bbs/museum/742/326061/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5-06-11 10:06:19.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기와(瓦)
 조선, 강화궁전지, 길이 40cm
 
 기와는 건물의 지붕 재료로서, 삼국시대부터 건물의 시기와 성격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문양이 있는 기와를 사용하여 고고학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 기와는 강화궁전지를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기와입니다.
 강화궁전은 임진왜란 이후 1622년(광해군 14) 태조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모시기 위해 태선전(太先殿)을 축조하면서 처음 조성되기 시작하여,이후 행궁(行宮), 장녕전(長寧殿), 만녕전(萬寧殿) 등 외적의 침입시왕의 피난처이자 왕실의 서적 및 도서를]]></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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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상평통보(常平通寶)}]]></title>
								<link>/bbs/museum/742/326060/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5-06-11 09:47:03.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상평통보(常平通寶)
 조선시대(지름 2.8cm)
 
 상평통보(常平通寶)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주화(鑄貨)입니다. 
 주화는‘주조화폐(鑄造貨幣)’의 줄임말로 금속을 가공하여 만든 화폐를 말합니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조선통보(朝鮮通寶), 십전통보(十錢通寶)와 같이 주화를 유통하고자 하였으나.
 원료의 부족과 상업 발달의 미흡으로인해 이루어지지 못하고, 조선 후기 상평통보의 보급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합니다.
 동전의 앞면에는 상평통보를 각인하였는데 상평( 常 平 )은 ‘상시평준(常時平準)’의 줄임말로
 동전의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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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벼루(硯)}]]></title>
								<link>/bbs/museum/742/326059/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5:58:59.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벼루(硯)
 고려~조선, 원주 행구동 유적 출토, 잔존 길이 9.3cm
 
  벼루는 붓글씨를 쓸 때 먹을 갈아 먹물을 만드는 도구로서, 고대사회로부터 문자(文字)생활과 역사를 같이 해왔습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벼루는 중국 은나라(殷代) 때 출토된 석판(石板)으로, 편평한 돌판 위에 색깔 있는 물질을 갈아 글씨를 썼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유적에서부터 벼루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벼루는 흙으로 구워 만들거나 흙으로 만든 후 유약을 발라 굽기도 하였으며, 나무, 옥, 금속 등의 여러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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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상평통보(常平通寶) }]]></title>
								<link>/bbs/museum/742/326058/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4:36:29.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상평통보(常平通寶)  
 조선, 지름 3.0cm
 
 강화 조선궁전지에서 출토된 상평통보이다.모양은 기본적으로 외형이 납작하고 둥근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있으며, 앞면에는 ‘상평통보(常平通寶)’라고 글자가 쓰여져 있다. 상평(常平)은 ‘상시평준(常時平準)’의 준말인데 유통가치에 항상 등가(等價)를 유지하려는 의도와 노력을 그대로 반영한 표시였다.
  조선 전기까지는 일반적인 교환수단으로 곡물이나 직물을 사용하였다. 벼와 같은 곡물은 작황에 따라 가치 변동이 크며 운반성이나 저장성이 떨어져 점차 삼베, 무명, 모시,]]></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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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백자 꽃 용무늬 의자}]]></title>
								<link>/bbs/museum/742/326057/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02-22 13:21:20.0</pubDate>
								<author>박물관관리자</author>
								<description><![CDATA[
 
  
  백자 꽃 용무늬 의자
  조선 원주 행구동 유적 출토
  
  1-2호 대형건물지에 대한 발굴조사 중 출토된 저부와 동체의 일부가 남아 있는 청자 의자입니다.
  동체 중앙부가 최대 볼륨을 이루며, 상부와 하부로는 완만한 곡면을 이루며 좁아지는 형태로 저부는 살짝 벌어져 안정감 있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유색은 녹갈색이 주조를 이루는데,  용문 부분을 제외하고는 박락이 심한 편이며,  내면은 시유하되지 않았습니다. 모래와 잡물이 많이 포함된 청자토로  두텁게 만들었고 용문 부분은 백토를 덧붙여 장식하였습니다. 동체 중]]></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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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백자 편(白磁)}]]></title>
								<link>/bbs/museum/742/326056/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02-22 13:20:42.0</pubDate>
								<author>박물관관리자</author>
								<description><![CDATA[
 
  
  백자 편(白磁)
  조선, 강화조선궁전지 출토
  
  조선시대에는 사옹원의 분원을 경기도 광주에 설치하여 왕실이나 중앙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자기를 생산하였다. 분원에서는 그릇의 굽 안바닥에 유약을 바르고 도구를 이용하여 글씨를 새겼는데 이 글씨는 시기마다 차이가 있어 생산시기와 장소를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릇에 글씨를 쓰는 행위는 분실이나 품질저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조선시대 그릇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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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명문와(銘文瓦)}]]></title>
								<link>/bbs/museum/742/326055/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02-22 13:20:16.0</pubDate>
								<author>박물관관리자</author>
								<description><![CDATA[
 
  명문와(銘文瓦)
  조선 강화조선궁전지 출토
  
  강화 조선궁지에서 출토된 기와류는 대부분 조선시대 궁권레서 사용된 것으로 비교적 다양한 유물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용문이나 봉황문 등 왕실을 상징하는 문양의 기와 외에도 병사이(丙私二), 을유(乙酉), 병사(丙四) 등의 명문이 음각된 印章瓦가 충토되어 경복궁의 침전(寢殿)지역, 奉元寺址, 경희궁지에서 발견된 인장와와 함께 조선시대 명문와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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