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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SS 게시판 2.0</title>
		<link>/nas/k2web/WIZARD_7.0.6.2_hallym/sites/museum/</link>
		<description><![CDATA[This is RSS Board.]]></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item>
								<title><![CDATA[뚜껑 있는 긴목 항아리(有蓋長頸壺유개장경호)}]]></title>
								<link>/bbs/museum/740/326049/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5-06-11 09:31:10.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뚜껑 있는 긴목 항아리(有蓋長頸壺유개장경호)
 삼국가야/토제 전고(全高):27.6cm,/완형
 
  
 뚜껑 있는 긴목항아리는 유개장경호(有蓋長頸壺)라고도 불리고 삼국시대 전후 유적에서 출토되는 대표적인 토기이다. 
 긴목항아리는 5세기부터 신라와 가야지역에서 많이 생산되었는데 고령을 중심으로 5세기 이후 가야 서부지역인 고령, 합천지역에서 
 주로 유행하였으며 특히 뚜껑이 있는 긴목항아리〔有蓋長頸壺〕가 많이 제작되었다.
 가야의 목이 긴 항아리는 목이 그릇 전체 높이의 1/5 이상을 차지하는 것을 말하며, 
 긴 목이 ]]></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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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그릇받침(器臺)}]]></title>
								<link>/bbs/museum/740/326048/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5-06-11 09:17:32.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그릇받침(器臺)
 가야, 높이 23.4cm
 
  
 그릇받침은 바닥이 둥근 항아리를 받치기 위해 만든 토기의 일종입니다. 
 삼국시대에 백제, 신라, 가야에서는 그릇받침을 화로모양, 바리모양, 원통모양, 고리모양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주로 대형 무덤의 
 껴묻거리(副葬品)나 제사용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그릇받침은 6세기 전반 대가야에서 만들어진 바리모양의 그릇받침으로 받침과 굽다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굽다리에는 투창(透窓)이라고 하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장식적인 효과와 함께 그릇의 무게를 줄여주려는 
 역할을]]></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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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방울잔}]]></title>
								<link>/bbs/museum/740/326047/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6:42:00.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방울잔
 삼국-가야, 길이 17.6cm
 
  방울잔은 잔 형태의 그릇에 흙이나 돌로 만든 방울알을 넣어 흔들면 딸랑딸랑 맑고 고운 소리가 나도록 한 토기이며, 다른 명칭은 ‘영부배(鈴付杯)’라고도 한다.
 방울잔은 기원후 5~6세기 경남 지역의 가야 고분에서 주로 출토된다. 
 마을 단위의 장송의례(葬送儀禮)나 제사에 술을 따르는 제의 용기로 많이 쓰이는데, 잔 안에 있는 방울은 악령을 쫓는 주술적인 의미를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또 전쟁 때는 장수가 출정하기 전 이 잔으로 술을 마신 뒤 흔들어 군사들의 사기를 진작하거]]></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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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와질토기(瓦質土器)}]]></title>
								<link>/bbs/museum/740/326046/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3-02-03 16:27:07.0</pubDate>
								<author>박물관</author>
								<description><![CDATA[
 
 
 
 
 
 
 와질토기(瓦質土器)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3세기
 
  기원전 1세기부터 3세기는 선사에서 역사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고고학계에서는 연대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철기시대(鐵器時代), 삼한시대(三韓時代), 삼국시대 전기(三國時代 前期)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이 시기의 한반도는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토기제작기술을 받아들여 이전과 전혀 다른 토기가 만들어진다. 물레의 사용으로 토기 제작이 빨라졌으며 지붕이 있는 가마인 등요(登窯)에서 더 높은 온도에서 토기의 대량 생산이 가]]></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오리모양 토기}]]></title>
								<link>/bbs/museum/740/326045/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02-22 13:19:29.0</pubDate>
								<author>박물관관리자</author>
								<description><![CDATA[
 
 오리모양토기
 3세기 후반
 
 오리모양토기는 상형토기(象形土器)의 일종으로, 상형토기란 새나 말, 인물, 집, 신발 등의 모양을 본떠 만든 특이한 형태의 토기를 말합니다. 상형토기의 내부는 그릇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속이 비어 있으며, 의례·제사 행위와 관련된 유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오리모양토기는 3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데, 이 시기에 신라와 가야의 문화권에 해당되는 지역인 낙동강 동쪽 지역에서 주로 출토됩니다. 이른 시기의 오리 모양 토기는 울산이나 경산, 경주, 부산, 김해 등지에서 출토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은제 요대 및 요패 일식(銀製腰帶 및 腰佩一式)}]]></title>
								<link>/bbs/museum/740/326044/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02-22 13:18:26.0</pubDate>
								<author>박물관관리자</author>
								<description><![CDATA[
 
  
 
 
  은제 요대 및 요패 일식(銀製腰帶 및 腰佩一式)
 
 가야
 
 삼국시대의 허리띠 장식은 천이나 가죽으로 만든 띠의 표면에 마디형태의 대금구(帶金具)를 장식하고, 물고기나 칼 모양등 다양한 장식을 매단 형태입니다. 가죽 띠에 붙이는 장식은 금이나 은, 또는 옥 등의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 집니다. 허리띠에 달리는 장식은 물고기 모양이나 곡옥(曲玉), 숫돌, 침통(針筒), 약롱(藥籠)등 다양한 형태를 가지는데 이것의 숫자가 많을수록 더 높은 신분임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세발토기(三足土器)}]]></title>
								<link>/bbs/museum/740/326043/artclView.do?layout=unknown</link>
								<pubDate>2021-02-22 13:16:43.0</pubDate>
								<author>박물관관리자</author>
								<description><![CDATA[
 
 세발토기(三足土器)
 백제
 
 뚜껑접시()형태의 둥그런 배신아래가 짧은 다리가 3개 달려있는 것으로, 백제토기의 가장 전형적 기종의 하나입니다.
 초기인 한성기 백제유적인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에서는 주로 생활유적에서만 출토되다가, 5세기대인 청주 신봉동, 논산 표정동 고분군에서 부장품으로 출토되고 있습니다.
 그 기능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사나 공헌용으로 쓰이는 의례용 그릇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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